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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답사 이벤트 일정지 소개 2탄!
2002-10-17 오전 10:06:00조회 8926
안녕하세요, 천상비 고객만족팀 입니다.
10월 15일 부터 20일까지 중국 현지를 답사하는 천상비 대표자 분들의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17일 중국현지에서는 밤샘기차를 타고 서안에서 낙양으로 이동을 하고 있답니다.
낙양에 도착하는 일행은 용문석굴과 저녁에 소림사를 방문할 예정이며,
천상비 식구들과 이러한 일정의 호흡을 같이 하기 위하여 16일 일정 장소에 대한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중국 여행일 (2002년 10월 17일) : 낙양, 용문석굴, 소림사
낙양성 (뤄양 [洛陽(낙양), Luoyang])

면적 1만 5208㎢, 인구 602만 명(1998)이다. 황허강[黃河]의 지류인 중국 허난성 서부 뤄허강[洛河] 유역에 위치한다. 중국의 7대 고도(古都)로 꼽히며, 성도(省都)인 정저우[鄭州]와의 거리는 140km이다. 장안(長安:지금의 西安)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자주 국도(國都)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BC 11세기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동방경영의 기지로 축성한 데서 비롯되며, 당시에는 낙읍(洛邑)이라고 하였다. 그뒤 BC 770년에 주왕조가 현재의 산시성[陝西省]의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으로 천도한 뒤 동주(東周)의 국도로 번영하였고, 후에 후한(後漢), 삼국(三國)의 위(魏)·서진(西晉)도 이곳에 도읍하였는데, 후한 때부터 도성의 규모가 남북 9화리(華里:1화리=0.5km), 동서 6화리였기 때문에 구륙성(九六城)이라고 하였다.
한편 정식명칭은 전한(前漢) 때에 낙양으로 불리다가, 후한이 AD 25년에 국도로 정하면서 현재 명칭인 뤄양으로 고쳤다. 후에 북위(北魏)가 화북을 평정하자, 493년에 효문제(孝文帝)가 산시[山西]의 다퉁[大同]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구륙성을 중심으로 시역(市域)을 동서 20화리, 남북 15화리로 확장하였다. 호수(戶數) 약 11만, 불사(佛寺) 1,378을 헤아렸던 당시의 모습이 양현지(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기술되어 있다.
수(隋)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605년에 병란으로 황폐한 북위의 뤄양성 서쪽 15km 지점에 거의 같은 규모(주위 69화리)의 새로운 성을 건설하고, 장안의 부도(副都)로 삼아 동도(東都)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뤄양의 전신이다. 당(唐)나라도 부도로서의 뤄양의 지위를 이어받아 동도하남부(東都河南府)라고 불렀으나, 수·당시대에는 서쪽의 장안이 정치도시인데 대하여 뤄양은 경제도시로 대운하를 따라 수송되는 강남의 물자 집산지로 번영하였다.
그러나 안사(安史)의 난(亂)이 일어난 뒤 쇠퇴하여 오대(五代) 때에 후당(後唐)의 국도가 되고, 북송(北宋) 때까지 서경(西京)이라고 불렀으나 원(元)·명(明)·청(淸)나라 때에는 지방도시로 일관하였다. 중화민국 시대에는 한때 성도가 되었고, 1933년에는 난징[南京] 정부가 이전해 왔던 적도 있다. 1948년에 시(市)로 승격하였다.
룽하이철도[連雲港~蘭州]와 쟈오즈철도[焦枝鐵道:焦作∼枝城]의 교차점이며, 310·207국도와 고속도로가 지나고, 민항(民航)도 통한다.
문화유적으로는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인 바이마사[白馬寺]·중국 미술사상 중요한 문화재로 꼽히는 룽먼석굴[龍門石窟], 이밖에 톈진교[天津橋]·관린[關林]·뤄양구무[洛陽古墓]박물관·무단[牡丹]공원·백거이묘(白居易墓) 등 명승지가 많다.
륭먼석굴

뤄양[洛陽] 남쪽 약 14km 지점에 있다. 석굴이 있는 이췌산[伊闕山]은 이허[伊河]를 사이에 두고 서산(西山)과 동산(東山)으로 갈라지며, 석회암의 암벽에 다수의 크고 작은 동굴을 뚫어놓았는데, 동굴 안에는 저마다 엄청난 수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그 수는 동굴 1,352, 감(龕:불상을 모시는 장) 750, 석탑 39, 불상 9만 7306체라고 기록(룽먼寺保管所)되어 있다.
석굴은 북위(北魏) 때 만들기 시작하여 수(隋)·당(唐)으로 이어지고 송(宋)나라에서 끝났으나, 그 주요 부분은 5세기 말에서 7세기 후반에 이르는 불교미술의 전성기에 조영(造營)되었다. 북위굴(北魏窟)이 있는 서산의 석굴군(石窟群)은 고양동(古陽洞)을 비롯하여, 빈양동(賓陽洞)·연화동(蓮華洞) 등이 유명하며, 우수한 북위 불상이 많다.
또, 서산의 중앙에 있는 봉선사동(奉先寺洞)의 대로사나불(大盧舍那佛)은 높이 13m의 거대한 석불로서, 협시(脇侍)인 보살상·나한상·신왕상(神王像)·인왕상 등과 함께 당(唐)나라 조각의 최고봉을 이룬 수작으로서, 그 조상기술(造像技術)의 뛰어남과 높은 품격은 특기할 만하다.
당나라의 고종(高宗)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만들기 시작하여 675년에 준공되었다. 동산의 간경사동(看經寺洞) 등은 모두 당대에 조영한 것이다. 동산의 북쪽에는 백낙천(白樂天)의 묘가 있다. 룽먼의 북위불은 윈강의 불상에 비해 조상기법이 매우 섬세하고, 작풍에도 날카로움을 안에 숨긴 우려전아(優麗典雅)한 멋을 풍긴다.
불상이 가지는 유암(幽暗)한 표정, 당당한 체구, 정돈된 착의(着衣)와 상현좌(裳縣座), 힘차게 흐르는 구름을 타고 나는 신선과도 같은 천인(天人) 등 모두 남조(南朝) 불상 작풍의 영향을 받았다.
소림사
임제종(臨濟宗)의 대가람(大伽藍)이다. 고루(鼓樓)인 초조암(初祖庵)은 원(元)나라 때 건물이고 본전은 송(宋)나라 때(1125) 건물인데, 본전의 내부에 있는 인왕(仁王)·용 등을 부각한 석주(石柱)는 유명하다. 이 석주 외에 다수의 당·송 이후의 석비(石碑), 동위(東魏)의 삼존불(三尊佛), 북제(北濟)의 조상(造像) 등 200기(基) 이상이 남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 이 사찰은 496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가 발타선사(跋禪師)를 위하여 창건했다고 전한다. 달마(達磨)가 530년부터 9년간 여기서 좌선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중국의 문화유산을 보다 많이 알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구요, 중국 답사단의 일정은 계속 됩니다.